1. 책 소개
오랜만에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장편소설처럼 아주 치밀하고 극단적인 갈등은 없지만, 여기에 실린 여러 단편은 삶의 어두운 소재들을 섬세하면서 재미있게 구성하고 있다.
11편의 단편들은 짧지만 울리기에 충분하다. [숲의 대화]는 정지아 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봄날 오후, 과부 셋], [목욕 가는 날]과 일본에 번역된 [핏줄] 등을 포함하여 총 11편의 작품을 묶은 책이다.
이 소설집은 치매 노인, 중증장애인처럼 인생 밑바닥의 11가지 이야기를 평범하지만 비범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루하루를 간신히 견디고, 받아들이고, 끝내 살아가는 뼛속 저릿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의 소재이다.
2. 내용 및 줄거리
첫 편인 [숲의 대화]는 영감 운학이 아내가 묻힌 잣나무숲에서 60년 전에 죽은 동갑내기 도련님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인 [봄날 오후, 과부 셋]은 성격은 서로 다르지만 의지하고 살아온 세 과부 할머니의 봄날 나들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국의 열쇠]는 중증장애인인 '그'가 돌아가신 어머니와 함께 일군 헛개나무 과수원에서 가련한 베트남의 여인, 호아 숨겨주는 이야기다. [목욕 가는 날]은 "계집아이야, 너는 엄마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궁금하지도 않냐?" 생색내기 좋아하는 언니의 전화 한 통에 중년이 된 '나'와 엄마, 언니가 함께 목욕 가는 이야기다. [신난다, 러키 라이프]는 천금 같은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자, 무려 23년간 변함없는 사랑으로 아들의 재활을 위해 삶을 바치는 노부부의 이야기다.
[핏줄]은 마흔 너머까지 장가를 못 간 한산 이씨 27대 종손을 외국인 여자와 결혼시킨 집안의 이야기다. [혜화동 로터리]는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세 노인의 반세기 우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끝없이 땅속 깊은 곳에 묻힌 암반을 캐는 남자의 이야기 [인생 한 줌]은 한평생 몸 바친 일이 허망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 인생조차 가치가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글을 쓰기 위해 시골로 내려간 전직 기자의 전원생활을 그린 이야기[즐거운 나의 집]는 귀농을 결심한 도시인이 농촌 사회에 적응하려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그려냈다.
[나의 아름다운 날들]은 전직 고위층 간부의 아내 김 여사가 입주 가정부와 벌이는 팽팽한 자존심의 대결을 구성했다. 마지막 편인 [절정]은 갑자기 사라진 한 노숙자의 이야기를 통해 끝없이 포기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을 그려내지만 삶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전하고 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절망 속에서도 간절한 소통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네 번째 이야기인 [신난다, 러키 라이프]는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막내아들을 노부부가 무려 23년간 변함없는 사랑으로 재활을 위해 삶을 바치는 이야기다. 의사도 포기한 막내아들 '경우'는 15년 전 기적처럼 눈을 떴고, 23년 만에 한쪽 팔을 움직였다. 첫째 아들이 돈이 필요한 절실한 상황이 닥쳤음에도 노부부는 한 번도 '경우' 때문에 도와주지 못한다. 이미 재산이 바닥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죽지 않은 아들'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눈물겹다. 이렇듯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의 희망을 소박하고도 절박하게 그려내고 있다.
3.느낀점
이 소설이 전반적으로 무거운 이야기로 다루고 있다고 해서 슬픈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따뜻한 미소가 입가에 자연스럽게 번진다. 할머니들의 재밌고 유쾌한 대화들, 몸은 장애이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선하고 건강한 남자. "계집아이야 엄마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궁금하지도 않냐?"의 말처럼 귀에 착착 감기는 전라도 말투 등... 일상을 정감 넘치게 구성하면서 다소 어두워질 수 있는 부분을 재미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무심히 일상을 스쳐 지나간다. 그 속에서 힘없고 백 없는 사람들의 아픈 구석을 보듬고 살아가는 관계가 공동체의 삶이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춧돌인 듯하다. 이 책을 통해 일상에서 나와 주위와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과거를 거울삼아 다가올 미래의 현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현실의 존재하는 것들의 고귀함과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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